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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2막의 기쁨, 최지우
지극히 일상적인 보통의 순간에 차오르는 행복의 느낌, 그 고요한 기쁨을 전하는 배우 최지우.
아기 소리에 잠에서 깨 종일 곁에서 커가는 걸 관찰하며 지내요. 가만히 누워 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손과 발을 쓰면서 인간으로서의 기술을 빠르게 습득하고 있죠.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대견하기도 하고, ‘내 배 속에서 나왔네’ 하면서 신기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어요. 그러는 와중에 오늘처럼 서서히 촬영도 하고, 드라마나 영화 시나리오도 틈틈이 보고 있죠. 그렇지만 현장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복귀를 서두르고 싶지는 않아요. 아이가 하루하루 커가는 모습을 충실히 지켜보고 싶어서요.
동생이나 친구의 자식을 보면서 느끼는 건 부모의 모습을 절묘하게 닮은 점이 너무 신비롭다는 거예요. 어떤 점이 닮았어요?
일단 길쭉길쭉해요. 하하. 그리고 제가 말할 때의 입 모양이랑 닮아서 옹알이할 때 입을 한없이 보게 돼요.
엄마 최지우는 어떤 모습일지 정말로 궁금해요!
엄마 일을 열심히 공부하는 엄마라고 할까요? 저랑 친한 분들은 대부분 저보다 언니라 이미 아이들이 대학생인 경우도 있어요. 요즘 분유는 뭘 먹이는지, 이유식은 어떻게 만드는지 새까맣게 잊어버렸죠. 그래서 책 사서 혼자 열심히 공부하며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아이가 잘 먹는 이유식 레시피 등 최선을 다해 습득한 생생한 육아 정보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요.
결혼과 출산을 겪으며 자연스레 연기의 공백이 생겼어요.
그간 쉬고 싶은데도 좋은 작품이 들어오면 놓치기 아까워 완전한 쉼을 가져본 적이 없었어요. 결혼하면서는 마음을 굳게 먹고 1년 반에서 2년 정도는 일상에 충실한 시간을 가져보자 했죠. 처음에는 아까운 작품을 그냥 떠나보내야 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많이 흔들렸어요 그런데 그러다 보면 제가 중심을 잡을 수 없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내려놓기로 했어요. 아이를 꼭 갖겠다기보다는 인생의 새로운 챕터로 넘어가면서 제 일상에 충실한 날들을 가져보기로 한 거죠.
일상에 충실한 날들 속에서 인간 최지우에게 생긴 변화는 뭔가요?
철이 들었다는 것? 저는 제가 결혼할 때 철들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아이가 생기고 낳아 키우다 보니 비로소 진짜 철이 든 느낌이에요. 하하. 그전에는 개인주의적이었던 것 같아요. 남에게 피해 끼치지 않으려 노력하는 마음의 기저에 나도 피해를 받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있었다고 할까요? 내 사람, 내 가족, 내 팬만 생각했었던 것 같고. 그런데 이제는 더 멀리까지 시선을 두게 돼요. 그리 가깝지 않았던 친구들도 보이는 동시에 저와 오래 함께한 사람들의 존재가 곱절로 더 소중하게 느껴지고.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하는데, 제가 노산의 아이콘이니만큼 아이를 갖고자 하는 제 또래 여성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존재였으면 좋겠어요. 하하.
지난 커리어를 되돌아보면, 흥행작 퍼레이드를 통해 보여줬던 ‘지우 히메’의 아름다운 변주에서 언젠가부터 캐릭터의 스펙트럼이 확장된 것 같아요. 드라마 〈수상한 가정부〉의 ‘박복녀’, 〈유혹〉의 ‘유세영’, 〈두번째 스무살〉의 ‘하노라’를 떠올려봤어요. 그즈음 예능 프로그램으로 다채로운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고요. 영화 〈여배우들〉에서 이미숙 배우의 “지가 언제까지 공주 역할만 할 거야? 알을 깨고 나와야지”란 말대로 한 모멘트가 드라마와 예능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졌어요.
제 성격이 좀 조심스러운 편이에요. 사서 걱정하는 스타일이라고 할까요. 어릴 때는 더 심했어요. 그런데 우연히 〈1박 2일〉에 나가게 됐는데, 사람들이 많이 좋아해주셔서 ‘나도 재미있는 걸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샘솟는 계기가 됐죠. 이후 나영석 PD님이 〈삼시세끼〉 〈꽃보다 할배〉로 연락을 주셨는데 ‘내가 이걸 해도 될까?’ 하는 마음과 ‘고민하지 말고 믿고 따라가보자’ 하는 마음이 동시에 들었어요. 저처럼 걱정이 많은 성격은 후자가 도움이 될 때가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전 일단 시작하면 꾀를 피우지 않고 우직하게 열심히 하는 스타일이에요. 편하게 내려놓고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즐기는. 그러다 보니 작품 선택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흘러가게 된 것 같아요.
아무래도 드라마 〈겨울연가〉의 ‘유진’일 것 같아요. 사실 〈유혹〉이나 〈두번째 스무살〉 같은 경우 지금 제안이 들어와도 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반면 고등학생 역할을 하는 건 무리수라 ‘유진’은 다시는 못 할 캐릭터라는 생각에 노스탤지어로 남아 있어요. 지금보다도 부족한 연기였을 테지만 그런 풋풋한 느낌이 묻어나는 게 또 그때 연기의 미덕이었다는 생각도 들고요. 〈천국의 계단〉의 ‘정서’도 마찬가지예요. 더 이상 “송주 오빠!”라고 부르며 뛰어다닐 수는 없을 것 같아요. 하하.
오늘 촬영하면서 프레드 네크리스를 착용했는데, 영화 〈프리티 우먼〉에서 영감을 받아 창작된 목걸이라고 들었어요.
이번 촬영을 계기로 〈프리티 우먼〉을 다시 봤어요. 배우 꿈을 키웠던 학창 시절이 떠오르더라고요. 만들어진 지 30년이 지났는데도 어쩜 그리 재미있고, 줄리아 로버츠가 보석처럼 빛이 나는지! 오페라를 보러 갈 때 줄리아 로버츠가 착용했던 새빨간 드레스, 하얀 장갑, 석류 빛깔 목걸이가 아직도 생생해요. 우리가 사랑에 빠질 때 온몸을 타고 흐르는 설렘이라는 감각을 이보다 잘 담아낸 영화가 또 있을까요?
2018년 봄에 손 편지로 팬들에게 결혼 소식을 알렸던 게 생각나요. 결혼 이후 가장 큰 변화는 뭐예요?
결혼해보니 장단점이 있는 것 같아요. 싱글일 때는 밤새도록 영화를 보는 등 자유롭게 일상을 보낼 수 있었는데, 결혼하고 또 아이가 생기고 나니 늦잠조차 맘대로 잘 수 없어요. 힘든 부분도 있지만 무엇보다 제가 집중해야 할 것이 선명하게 보이고, 포기해야 할 것과 소중하게 지켜나가야 할 게 확실하게 분간이 돼요. ‘이것도 욕심나는데, 한 발 걸쳐놓으면 안 될까?’ 하는 헛된 마음이 일말의 고민 없이 정리가 된다고 할까요? 안정적인 명료함을 갖게 됐어요.
‘프리티 우먼’ 컬렉션의 슬로건이 ‘Your Way Your Love’라고 해요. 누군가를 만나 연애하고 인생의 동반자로 삼는 과정이 진짜 내가 어떤 사람인지 깨닫고 완성해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름다운 가정을 꾸려나가고 있는 최지우가 사랑하는 방식은 어떤가요?
결혼할 당시에는 아이가 생기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정을 매우 자연스럽게 했어요. 그렇다 하더라도 남편과 좋은 가정을 꾸릴 거고, 일과 친구들, 취미 생활 등이 삶을 풍요롭게 해주니 그대로도 충만하다고 생각했죠. 그러다 아이가 생겼는데 참 감사하고 행복한 동시에 희생해야 하는 것도 많았어요. 그처럼 사랑하는 방식, 살아가는 방식 모두 예견하고 결정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어릴 때는 “이런 배우가 되고 싶다”라거나 “이런 미래를 꿈꾼다”라고 하는 앞으로의 얘기를 좀 더 많이 했다면 요즘은 지금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람 일은 모르는 거고 현재를 충실하게 살면 좋은 미래가 오겠죠.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시간,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여건, 오늘 같은 화보 촬영, 믿고 함께할 수 있는 오랜 스태프들…! 현재 저를 둘러싼 모든 것에 감사하죠. 요즘엔 모든 게 그렇게 감사해요. 저 정말 철들었나 봐요. 하하.
그러면 지금 행복한가요?
마음이 풍요로워졌어요. 빵 반죽을 오븐에 넣으면 부풀어 오르듯이 내 안에 좋은 마음이 한껏 부풀어 있어요. 아이와 놀고 있다가, 눈이 내리는 걸 보다가, 집 안을 정리하다가, 시나리오를 읽다가 문득 ‘아, 좋다!’ 그런 마음이 들어요. 행복은 추구하는 것도 성취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때때로 차오르는 것 같아요. 대단하지 않은 지극히 일상적인 보통의 순간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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